연천 530GP 사건
연천 530GP 사건은 2005년 6월 19일 새벽 대한민국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 중부전선 비무장 지대(DMZ) 내 육군 28사단 소속 GP에서 일어난 피격 사건이다. 8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쳤고, 2명이 생존했다.[1] 2008년 5월 7일 총기 난사 피의자로 지목된 김동민 일병에 대한 사형 판결이 확정되었다.[2]
관련자
- 피의자 : 김동민 일병(1984년 8월 14일생, 당시 만 20세)
- 사건내용 : 내무반에 수류탄 1발을 던지고 K1 기관단총 44발을 난사해 6명이 현장에서 즉사, 이후 체력단련장으로 이동한 김동민 일병은 그 곳에서 만난 김종명 중위를 K1 기관단총으로 살해함.
- 사망자 : GP장 김종명 중위(26.학군 41기), 전영철(21), 조정웅(21), 박의원(22), 이태련(21), 차유철(21), 김인창(21), 이건욱(20) 당시 모두 상병
- 부상자 : 김유학 일병(20), 박준영 일병(20).
논란 및 의혹
조선인민군 공격 의혹
2007년 9월 28일, 연천군 총기 사건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, 김동민 일병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 작전 수행 중 북한의 공격을 받아 발생한 사건이라고 의혹을 제기하였다.[3] 이후에도 유가족들과 보수단체들은 노무현 정부 차원에서 당시 남북관계를 위해 사건을 은폐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, 특검 실시와 해당 사건의 재조사를 요구하는 시위를 지속적으로 열었다.[4]
군의 최초 상황 인식
당시 군 수사기록, 상황 보고서, 부대 일지, 장병 진술서 등에 따르면, 상황 근무자들과 GP 소대원들은 최초 상황이 발생했을 때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지하고 있었다.[5] "미상 적으로부터 530GP가 9발의 총격을 받았다는 내용 접수" "530GP 및 GOP와 전화를 해 대응 사격 실시 여부 지속 확인"(81연대 지휘통제실장 정판영 대위), "옥상 쪽으로 포를 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" "북한군이 공용화기를 쏘아서 건물이 무너지는 것으로 알았다"(생존 소대원), "북쪽의 도발이라 판단됨"(관측장교 김희준 소위) 등 군이 최초에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지하였다는 다수의 구체적인 진술이 있었다.[5]
피격 화기 종류 의혹
유가족들은 “GP 옥상 등에서 차단작전을 수행하다 북한의 미상화기(RPG-7) 9발의 공격을 받아 8명의 군인이 사망한 사건을 국방부가 가짜 범인을 내세워 은폐 조작했다”고 주장하였다.[3] 또한 “전문가들이 사상자의 상처가 총이나 수류탄이 아닌 파편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”며 “수류탄 파편 흔적이나 혈점이 없어 수류탄이 폭발한 것으로 볼 직접적인 증거도 없다”고 하면서 진상을 밝혀줄 것을 요구하였다.[3]
김동민의 범행 부인
2008년 5월 7일 고등군사 재판정에서 김동민은 재판장에게 “궁금한 것이 있습니다”라며 질문을 했고, 재판장이 “무슨 질문이냐”라고 묻자, 김동민은 "재판관님 왜 직접적 증거도 없고, 목격자도 없는데 왜 저라고 확신하시죠?" 라고 말했다.[6]
재수사
노무현 정부가 남북관계를 위해 북한군의 소행을 은폐했다고 일부 유족들과 시민단체가 지속적인 의혹을 제기하며 당시 시신을 검안했던 군의관을 검찰에 고발하였다.[7] 이에 따라 2017년 3월, 사건 발생 12년 만에 검찰은 연천 530GP 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하였다.[7]
정치적 파장
윤광웅 국방부장관이 책임을 지고자 사의를 표명하였으나,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반려하였다.[8]
같이 보기
- 강화도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
-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 사건
- 양주 군부대 총기 난사 사건
- 강원도 고성 군부대 총기 난사 사건
- 우범곤 순경 총기 난사 사건
- 연천 후임병 폭행사망 사건
- 서울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총기 난사 사건
- 나콘랏차시마 총기 난사 사건
- 보호 관심 병사
각주
- ↑ 軍 기강해이 도 넘었다, 한국일보 2005-06-19.
- ↑ GP 총기 난사 김 일병 파기 환송심에서도 사형
- ↑ 가 나 다 “유가족 “연천 GP총격은 北 소행””. 《동아일보》. 2007년 9월 29일.
- ↑ “연천 530GP 사건 진상규명 촉구 회견”. 《연합뉴스》. 2014년 3월 19일.
- ↑ 가 나 “530 GP에서 잠 못드는 영혼들”. 《시사저널》. 2007년 10월 15일.
- ↑ “[단독] 연천 530GP 사건 ‘김동민 일병’ 11년째 독거방에 있다”. 《시사저널》. 2016년 10월 6일.
- ↑ 가 나 “[채널A단독]‘김일병 난사 사건’ 12년 만에 재수사”. 《채널A 뉴스》. 2017년 3월 25일.
- ↑ 뉴스, SBS (2005년 6월 22일). “청와대, 국방장관 사표수리 일단 반려”. 2023년 11월 3일에 확인함.
- v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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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e
- 여순 사건(1948년)
- 문경 양민 학살 사건(1949년)
- 국민방위군 사건(1951년)
- 거창 양민 학살 사건(1951년)
- 연천 사단장 살해 사건(1959년)
- 5·16 군사 정변(1961년)
- 최영오 일병 사건(1962년)
- 무장군인 법원 난입 사건(1964년)
- 무장군인 김해경찰서 습격 사건(1965년)
- 무장군인 고려대학교 난입 사건(1965년)
- 해병대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(1966년)
- 해군 56함 침몰 사건(1967년)
- 1·21 사태(1968년)
- 울진·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(1968년)
- 대한민국 해군 방송선 피랍 사건(1970년)
- 실미도 사건(1971년)
- 충무 앞바다 YTL정 침몰 사고(1974년)
- 해경 경비정 제863호 침몰 사건(1974년)
- 12·12 군사 반란(1979년)
- 5·17 비상 계엄(1980년)
- 5·18 광주민주화운동(1980년)
- 남해군 무장공비 간첩선 침투 사건(1980년)
- 다대포 무장간첩 침투 사건(1983년)
- 혜화동 무장 탈영병 총격 난동사건(1993년)
-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사고(1993년)
- 양주 군부대 총기 난사 사건(1994년)
- 산사태로 군인 60명 순직 사건(1996년)
-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(1996년)
- 민주지산 특전사 동사 사고(1998년)
- 속초 잠수정 침투 사건(1998년)
- 여수 반잠수정 침투 사건(1998년)
- 제1연평해전(1999년)
- 제2연평해전(2002년)
- 육군훈련소 인분 사건(2005년)
- 연천 530GP 사건(2005년)
- 대추리 사태(2006년)
- 2007년 강화 총기 탈취 사건(2007년)
- 철원 군부대 수류탄 폭발 사고(2008년)
- 대청해전(2009)
- 천안함 침몰 사건(2010년)
- 연평도 포격(2010년)
- 해병대 민항기 오인 사격 사건(2011년)
- 강화도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(2011년)
- 연천 후임병 구타사망 사건(2014년)
- 강원도 고성 군부대 총기 난사 사건(2014년)
- 서울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총기 난사 사건(2015년)
- 2015년 DMZ 지뢰폭발사건(2015년)
- 서부전선 포격 사건(2015년)
-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준비 사건(2017년)
- 포항 마린온 추락 사고(2018년)
- 2020년 GP 총격 사건(2020년)
- 공군 부사관 성추행 피해 사망 사건(2021년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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